KUCC에 들어오기까지
저는 대략 2011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왔고, 그 때부터 개발자가 아닌 진로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솔직히 말하면 공부보다는 개발이나 좋아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저는, 입시가 끝나고 20살이 된 해 2019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수능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가고 싶은 과가 아닌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아버지의 모교라는 이유만으로 원서를 쓰고, 오게 된 고려대학교에서, 학과 공부보다는 제 진로에 도움이 되고 제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입학하자마자 학교 커뮤니티 등에 ‘컴퓨터’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KUCC를 알게 되고, 곧바로 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지금 그때 제가 쓴 지원서를 읽어보면, ‘이렇게 짧은 지원서를 왜 뽑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길지 않았습니다. 그 때 작성한 지원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되어 지금까지 코딩을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어릴 때는 단순히 목표 없이 혼자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 좋아서 했지만 점점 목표가 생기고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알고리즘 공부를 하며 흥미를 느꼈고 정보올림피아드 출전을 목표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학과는 아니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한 흥미나 열정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다시 봐도 짧네요. 해명하자면 고등학교 내내 정시파이터를 외치며 수시 대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저는 저 때까지 중3때 쓴 고등학교 지원서 이후로는 자기소개서를 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때는 지금처럼 지원서에 글자 수 제한이 있지 않아서 면접을 보고,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인물이 되고
합격 소식을 듣고, 회비를 입금하자마자 가게 된 KUCC MT는 제 첫 MT였습니다. 새내기의 괜한 걱정으로, 괜히 술 마시고 사고라도 칠까 봐 일찍 잤는데, 새벽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때 운영진 언니가 저를 데리고 나가 라면을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그 때 먹은 라면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으로 기억됩니다. MT에 다녀온 후에는 밥약도 많이 받았습니다. 19년 1학기에 00년생 막내가 둘 밖에 없어서 언니, 오빠들이 많이 귀여워해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점점 동방에 자주 가게 되고, 동방에서 낮잠도 자고, 하다 보니 어느 새 KUCC는 마음 편하고, 집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2019년 연말에는 어쩌다 보니 웹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스터디원들과 같이 우연한 기회에 ‘고카톤’이라는 고려대학교 해커톤에 참가했습니다. 이 때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는데, 이 경험이 저를 웹 개발자의 길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게임 개발 쪽을 진로로 잡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입부 다음 학기에는 운영진에서 총무를 맡았고 그 다음 학기에는 부회장도 하며 동아리에 많은 애정을 쏟았습니다. 부회장 시절에는, 제1회 KUCC 게임잼을 준비하는 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게임잼은 1박2일동안 모여서 자유롭게 주제에 맞게 게임을 만드는 행사인데 코로나 때문에 결국 그 학기에는 개최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는 관훈 오빠가 행사나 이런저런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해주었는데, 이 때 관훈 오빠의 추진력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즐겨~’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많이 썼었는데요. 원체 걱정이 많은 제가 이 말에 많이 힘을 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도 입고 있는 고인물의 상징, KUCC의 불후의 명작인 회색 후드티를 제작한 것도 부회장 때네요.
첫 회장
부회장까지 하고 나니, 회장에 대한 욕심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기도 했습니다. 게임잼도, 해커톤도 열고 싶었습니다. 알고리즘 경진대회도 열고 싶었고, 다양한 행사를 열고 싶었습니다.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첫 회장은, 지금 생각하면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너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어리기도 했고요. 우선 1학기 때부터 준비하던 게임잼을 개최했습니다. 참가자 13명이서 동아리방에서 야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게임을 만들던 기억은 아직도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음 회장 때도 제2회 게임잼을 개최했습니다. 생각보다 회장은 할 일이 많았습니다. 동아리연합회에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회의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스터디나 세션 관리하는 것도 일이고, 리크루팅도 힘들고.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습니다. 해야 할 일들을 쳐내고 나니 벌써 종강이었습니다. 종강 즈음에는 2021 고카톤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개최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정말 좋은 추억과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1년의 휴식기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격동의 2020년을 보내고 나니, 학교 생활에 염증이 느껴졌습니다. 수업이나 행사들도 비대면으로 계속되다보니 지친 게 컸습니다. 그래서 인턴십을 1년간 진행했습니다. 1학기는 휴학하고 풀타임으로, 2학기는 비대면 수업과 병행했어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를 엮어 <톡기의 인턴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동안 동아리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고, 스터디 정도만 간간히 참여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또 회장?
1년간 쉬고 동아리 활동에 복귀하려니, 새로운 사람들도 많고 조금은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종강총회에 회장 출마자가 나오지 않아 유예기간을 더 두고 출마할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왕 동아리 활동 다시 해보려는 거, 제대로 해보자 싶었지요. 제가 시작한 게임잼의 명맥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도 컸고요. 결국 염원을 이뤄 제2회 게임잼을 개최했습니다. 이 때 개발한 ‘민초 킬러’라는 웹 게임을 시작으로, 웹으로 만드는 포인트 앤 클릭 게임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꾸준히 웹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민초 킬러’ 개발기를 블로그에 업로드했는데, KUCC 지원자분들 중 그 글을 읽거나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오신 분들도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이 때 낡은 동아리방 가구들을 많이 바꾸었지요. 책상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던 철제 책꽂이도 바꾸고, 역대 오대호를 빛 바래지 않게 보관할 서랍과 사물함을 대신할 캐비닛까지…. 힘쓰는 일 많이 해준 당시 부회장 오빠에게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KUCC 동방에는 그동안 없던 이층 침대도 새로 놓았습니다. 사물함이 빈 자리에 무엇을 놓을까 하다가, 한 부원이 반쯤 장난으로 이층 침대라고 한 말에 홀린 듯이 당근 마켓을 들어갔다가 철제 이층 침대 무료 나눔 글을 발견하고 당장 용달로 가져온 것이 지금 동아리방의 침대인데요.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화예요.
아직 알고리즘 경진대회를 열지 못했기도 했고, 회장 후보가 없기도 했기에 2학기 회장 후보에 출마하여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리즘 경진대회는 출제자가 중요한데, 마침 국제 정보올림피아드에서 탑골드(만점)를 딴 알고리즘 고수 지인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서 개최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이 때 회지를 재창간하려고 했다가 다른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려 하지 못했었는데, 50주년 기념으로 재창간하게 되니 오히려 더 뜻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세 번의 회장동안 게임잼, 해커톤, 알고리즘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나니 여한이 없습니다.
마치며
회장 임기가 끝난 이후에는, 저번 학기에는 평부원으로, 이번 학기에는 교육홍보부장 겸 행사기획부 겸 오대호 편집장으로 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회장이라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동아리에서도 조금 더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한 해를 보내는 중이에요. 동아리방에서 친구들, 선배들과 각자 할 일을 하며 야식도 먹고 노는 것이 인생의 낙입니다. 이렇게 보니 정말 KUCC는 저의 대학 생활을 전부 바친 곳이네요. KUCC에서의 5년을 회고하고 나니 왠지 졸업해야 할 것 같지만, 그건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졸업한 후에도 제가 남긴 영향들이 계속 남아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아직도 제가 역대 회장 중 막내인데요. 이제 슬슬 저보다 후배인 회장도 나올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누구든 KUCC를 잘 이끌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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